솔직히 저는 용암 영상을 처음 봤을 때 그저 "와, 무섭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지구 내부에서 5,000~6,000도짜리 열이 수십억 년 동안 식지 않고 유지된다는 사실, 그리고 그 열이 우리 생활을 바꿀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한 건 훨씬 나중이었습니다. 지열학은 바로 그 열을 추적하는 학문입니다.
지구는 왜 아직도 뜨거운가
화산이 분출하는 장면을 뉴스에서 볼 때마다 저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그 열은 어디서 끊임없이 공급되는 걸까요. 상상만 해도 아찔한 수천 도의 열이 수십억 년 넘게 식지 않는다는 게 직관적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열의 기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원시 열(primordial heat)입니다. 여기서 원시 열이란 약 46억 년 전 지구가 탄생할 당시, 수많은 미행성체들이 충돌하면서 발생한 운동에너지가 열로 전환되어 지구 내부에 갇혀 있는 에너지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지구 탄생의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셈입니다. 나머지 절반 이상은 방사성 붕괴열에서 비롯됩니다. 방사성 붕괴열이란 우라늄(U-238, U-235), 토륨(Th-232), 칼륨(K-40) 같은 방사성 동위원소들이 안정한 원소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방출하는 열을 말합니다. 핵발전소가 우라늄의 핵분열 에너지를 쓰는 것처럼, 지구 내부는 자연적인 방사성 붕괴를 통해 스스로 열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지구가 수억 년을 버티면서도 식지 않는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신기하게만 느껴졌는데, 두 가지 열원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는 걸 알고 나니 비로소 납득이 됐습니다. 지구가 얼마나 정교하게 균형을 유지하는 존재인지,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지열 구배와 열 흐름, 숫자로 이해하는 지구의 체온
지열학에서 핵심적으로 다루는 개념이 지열 구배(geothermal gradient)입니다. 지열 구배란 지하로 깊이 들어갈수록 온도가 얼마나 빠르게 올라가는지를 나타내는 수치입니다. 그런데 이 기울기는 지역마다 크게 다릅니다. 화산 활동이 활발한 아이슬란드나 일본 일부 지역은 기울기가 훨씬 가파른 반면, 안정된 대륙 내부의 순상지(shield) 지역은 완만합니다. 순상지란 오랜 지질 시대 동안 지각 변동이 거의 없었던 안정된 결정질 암석 지대를 뜻합니다. 캐나다 순상지나 시베리아 같은 지역이 대표적입니다. 지열 흐름(heat flow) 역시 중요한 측정값입니다. 지열 흐름이란 단위면적당 지표 밖으로 빠져나오는 열에너지의 양으로, 밀리와트 퍼 제곱미터(mW/m²) 단위로 표현합니다. 지구 전체 평균은 약 87mW/m²인데, 해양 중앙 해령처럼 지각판이 갈라지는 발산 경계 부근에서는 이 수치가 수 배를 웃돌기도 합니다(출처: 미국 지질조사국 USGS). 연구자들은 시추공(borehole), 즉 지하 깊이 뚫어 넣은 구멍에 온도계를 투입해 깊이별 온도를 직접 측정하는 방식으로 지역별 열 흐름 지도를 만들어갑니다.
지열 자원이 존재하는 형태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됩니다.
- 수열형(hydrothermal) 시스템: 지하에 고온의 열수나 증기가 존재하는 형태. 뉴질랜드 로토루아, 미국 옐로스톤, 아이슬란드 게이시르가 대표적입니다.
- 지열 저류층(petrothermal) 시스템: 유체 없이 고온의 건조한 암석이 존재하는 형태. EGS 기술로 활용합니다.
- 저온 지열 시스템: 지표 수 미터 깊이의 낮은 온도 차이를 히트펌프로 활용하는 형태.
이 세 가지 유형을 알고 나면, 지열 에너지가 단순히 '뜨거운 온천'에 국한된 게 아니라는 점이 명확해집니다. 저온 지열 시스템 하나만 해도 건물 냉난방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지열 에너지의 현재와 한국의 과제
제가 지열 에너지에 진지하게 관심을 갖게 된 건, 사실 2017년 포항 지진 뉴스를 접하면서부터였습니다. 당시 포항 지열발전소 실증사업이 지진을 유발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지열 발전이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었던 저로서는 꽤 충격이었습니다. 포항 사례는 EGS(Enhanced Geothermal System, 향상된 지열 시스템) 방식을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EGS란 고온의 건조한 암석층에 물을 고압으로 주입해 인공 균열을 만들고, 그 틈으로 물을 순환시켜 열을 회수하는 기술입니다. 지열 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지역에서도 지열 발전이 가능하도록 확장성을 높인 방식인데, 고압 물 주입이 기존 단층을 자극해 지진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 포항 사건이 드러낸 위험이었습니다. 제 생각에 이 사건은 지열 자원 개발 전에 지반 안정성과 단층 분포에 대한 면밀한 지질학적 평가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값비싼 교훈으로 남겼습니다. 반면 세계 다른 나라의 사례는 사뭇 다릅니다. 아이슬란드는 전체 전력의 약 30%를 지열로 생산하고, 난방의 90% 이상을 지열에 의존합니다. 케냐는 아프리카 최대의 지열 발전 국가로, 전체 전력의 절반 가까이를 지열에서 얻고 있습니다(출처: 국제재생에너지기구 IRENA). 이 두 나라의 공통점은 충분한 지질 조사를 바탕으로 적합한 지역에 적합한 방식을 적용했다는 점입니다. 지열 발전이 태양광이나 풍력과 비교해 특별히 주목할 점은 기저 부하(base load) 전원이라는 특성입니다. 기저 부하란 날씨나 시간에 관계없이 24시간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전력을 의미합니다. 태양광은 밤이나 흐린 날 발전이 안 되고, 풍력은 바람이 없으면 멈춥니다. 지열은 그 약점이 없습니다. 기후 위기 시대에 탄소 배출 없는 안정적 전력원을 확보해야 한다면, 지열 에너지는 분명히 다시 들여다볼 가치가 있는 선택지입니다. 지열학은 단순히 에너지 문제만을 다루는 학문이 아닙니다. 지구 내부 열 상태를 이해하는 것은 판구조 운동의 구동 원리와 맨틀 대류 패턴을 파악하는 근거가 되고, 더 나아가 화성이나 유로파 같은 다른 천체의 지열 환경을 연구하는 행성 지질학과도 직결됩니다. 지구가 수십억 년 동안 열을 간직하며 생태계를 유지해왔다는 사실 자체가, 저에게는 지구가 얼마나 소중하고 정교한 존재인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대목입니다. 지열 에너지 개발에 관심이 생겼다면, 우선 국내 지질 환경과 단층 분포 데이터부터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어디서 어떻게 개발하느냐가 성패를 가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