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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파로 본 지구 내부 (지진파, 암영대, 지진파 단층촬영)

by 호프123 2026. 5. 17.

인류가 직접 뚫은 가장 깊은 구멍은 고작 12.2킬로미터입니다. 지구 반지름 6,371킬로미터와 비교하면 사과 껍질을 손톱으로 살짝 긁은 수준에 불과합니다. 처음 이 수치를 접했을 때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굴착 한 번 없이 지구 깊숙한 곳에 용융된 금속 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밝혀냈을까요. 그 열쇠가 바로 지진파(seismic wave)입니다.

지진파가 지구 내부를 읽는 방법

고등학교 물리 수업에서 빛의 굴절과 반사를 배웠을 때, 솔직히 저는 그냥 시험에 나오니까 외운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빛이 공기에서 물로 들어갈 때 경계면에서 꺾인다는 내용이었는데, 나중에 지진파도 똑같은 원리로 지구 내부를 통과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꽤 놀랐습니다. 고등학교 때 배운 내용이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으니까요.

지진이 발생하면 진원에서 두 종류의 실체파(body wave)가 사방으로 퍼져 나갑니다. 실체파란 지표면이 아닌 지구 내부를 직접 통과하며 이동하는 파동을 말합니다. 이 중 P파(Primary wave)는 매질을 압축하고 팽창하는 종파로, 고체는 물론 액체와 기체도 통과할 수 있습니다. 반면 S파(Secondary wave)는 진행 방향과 수직으로 매질이 흔들리는 횡파로, 오직 고체에서만 전달됩니다. 이 차이가 결정적입니다.

지진파는 밀도나 탄성이 다른 두 층의 경계면에 부딪히면 굴절(refraction)과 반사(reflection)가 일어납니다. 굴절이란 파동이 서로 다른 매질의 경계를 넘을 때 진행 방향이 꺾이는 현상으로, 빛이 물속에서 휘어 보이는 것과 동일한 원리입니다. 과학자들은 전 세계 수천 개의 지진 관측소에서 이 굴절파와 반사파의 도달 시간 차이를 수집하고, 역산(inversion) 기법으로 지구 내부의 층 구조를 역으로 계산해 냅니다. 역산이란 결과값에서 거꾸로 원인을 추적하는 수학적 방법으로, 마치 의사가 몸 바깥에서 초음파를 쏘아 장기를 파악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진파 탐사가 밝혀낸 지구 내부 구조의 핵심 사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P파와 S파 모두 진원으로부터 각거리 103도~143도 구간에서 수신되지 않는 암영대(shadow zone)가 존재한다.
  • S파는 103도 이상의 전 구간에서 완전히 사라지며, 이는 외핵이 액체 상태임을 증명한다.
  • 1936년 잉에 레만(Inge Lehmann)은 P파 암영대 내부에서 희미한 P파 신호를 발견해 내핵(solid inner core)의 존재를 처음으로 밝혔다.
  • 내핵은 반지름 약 1,220킬로미터의 고체 구로, 약 360만 기압의 극한 압력 덕분에 5,000~6,000도의 고온에서도 녹지 않는다.

1906년 올덤(R.D. Oldham)이 암영대를 지구 핵의 존재 증거로 처음 해석한 이후, 1914년 베노 구텐베르크(Beno Gutenberg)는 맨틀과 핵의 경계면이 깊이 약 2,900킬로미터 지점에 있다는 사실을 정밀하게 계산했습니다. 이 경계는 오늘날 '구텐베르크 불연속면'이라 불립니다. 굴착 한 번 하지 않고 파동의 거동만으로 이 경계를 찾아낸 것이 제가 처음 알았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입니다.

 

지진이 두려운 이유와 지진파가 가진 가능성

저는 지진 안내 문자를 받을 때마다 괜히 긴장이 됩니다. 실제로 한국도 지진으로부터 완전히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1978년 홍성 지진이 보여줬습니다. 당시 규모 5.0의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지고 많은 사람이 다쳤습니다. 그 이후로도 경주, 포항 등지에서 크고 작은 지진이 이어졌고, 문자 한 통에도 괜히 손이 떨리는 경험을 해보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저도 그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지질학자들 입장에서 지진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피해를 주는 재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구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드문 기회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는 솔직히 복잡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재해가 연구 자료가 된다는 것이 어딘가 아이러니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현대에는 지진파 단층촬영(seismic tomography)이라는 기법이 이 탐사를 한 차원 끌어올렸습니다. 지진파 단층촬영이란 다양한 방향에서 지구를 가로지른 지진파의 미세한 속도 차이를 수천 개 관측소 데이터와 합쳐 지구 내부를 3차원 영상으로 재구성하는 기술입니다. 병원 CT 촬영과 원리가 거의 같습니다. 파동이 고온이거나 부분 용융된 영역을 통과하면 느려지고, 차갑고 단단한 암석 구간에서는 빠르게 이동하는데, 이 속도 차이가 내부 구조를 드러내는 단서가 됩니다.

이 기법 덕분에 하와이 아래에서 핵-맨틀 경계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열 기둥, 즉 맨틀 플룸(mantle plume)의 존재가 시각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수억 년 전 바닥으로 가라앉은 고대 해양판이 하부 맨틀에 아직 잔류하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습니다(출처: 미국지질조사국 USGS).

탐사 지진학(exploration seismology) 분야에서는 자연 지진 대신 트럭 진동기나 소규모 폭발 같은 인공 진동원을 사용해 지하 수 킬로미터의 석유·가스 저류층 구조를 파악하는 데도 동일한 원리가 활용됩니다. 최근에는 광섬유 분산 음향 센서(DAS)와 인공지능 기술을 결합해 훨씬 촘촘한 데이터를 자동으로 분석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 중입니다(출처: 미국 지진학회 SSA).

지진파 탐사는 이미 지구를 넘어 화성으로도 확장되었습니다. NASA의 탐사선 인사이트(InSight)는 화성에 지진계를 설치해 화성 지진(marsquake)을 기록했고, 그 데이터로 화성 내부의 지각 두께와 핵의 상태를 추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지진은 막을 수 없는 자연현상이지만, 그 에너지를 어떻게 읽느냐가 중요합니다. 지진파가 담고 있는 정보를 제대로 해독하는 능력이 쌓일수록, 언젠가는 지진 예측 정확도도 함께 높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재해를 두려워하는 것과 동시에 그 안에서 정보를 읽어내려는 노력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 이번에 이 주제를 파고들면서 제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이었습니다. 지진 문자를 받을 때 여전히 긴장되겠지만, 이제는 그 파동이 어딘가에서 지구의 속살을 기록하고 있다는 생각도 함께 들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