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이 '폭발하는 산'이라는 이미지만 떠올린다면, 사실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 겁니다. 제가 한라산 정상에서 백록담을 내려다봤을 때, 그 웅장한 분지가 화산 폭발의 산물이라는 걸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화산이 얼마나 다양한 얼굴을 가졌는지 실감했습니다. 화산은 형태도, 분화 방식도, 활동 상태도 제각각입니다. 그리고 그 차이가 곧 우리 삶의 안전과 직결됩니다.
칼데라와 순상 화산, 한라산에서 배운 것
백록담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등산로를 오르는 내내 '정상에 뾰족한 봉우리가 있겠지'라고 막연히 상상했는데, 실제로 마주한 건 지름 수백 미터에 달하는 넓고 둥근 분지였습니다.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고 나서야 그게 칼데라(caldera)라는 구조라는 걸 알았습니다. 여기서 칼데라란 화산이 분화한 뒤 지하의 마그마 챔버, 즉 마그마가 모여 있던 공간이 비어버리면서 지표가 함몰되어 생긴 대형 원형 분지를 말합니다. 단순히 분화구가 큰 게 아니라, 지표 전체가 수십 킬로미터 규모로 꺼져 내려앉는 현상입니다.
한라산은 전체적으로 보면 순상 화산(shield volcano)에 가까운 구조입니다. 순상 화산이란 점성이 낮은 현무암질 용암이 멀리까지 흘러내리면서 방패를 엎어놓은 듯 완만하게 퍼진 형태의 화산을 가리킵니다. 경사각이 5~10도에 불과해 얼핏 보면 산이라기보다 거대한 구릉처럼 보이는 게 특징입니다. 제가 한라산을 오를 때 경사가 다른 산들에 비해 비교적 완만하다고 느꼈는데, 그게 괜한 착각이 아니었던 겁니다.
제주도가 이러한 화산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지질학적으로 매우 귀한 가치를 지닙니다. 실제로 유네스코는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했을 만큼, 제주의 화산 지형은 학술적으로도 세계가 인정하는 수준입니다(출처: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성층 화산과 분화 양식, 위험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화산 하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삼각형 실루엣, 그게 바로 성층 화산(stratovolcano)입니다. 성층 화산이란 용암류와 화산 쇄설물, 즉 화산 폭발로 날아오르는 암석 조각과 화산재가 번갈아 쌓이면서 만들어진 원추형 화산을 말합니다. 후지산, 베수비오, 피나투보가 모두 이 유형입니다. 보기에는 가장 '고전적인 화산'의 모습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위험한 유형이기도 합니다. 점성이 높은 마그마가 내부 압력을 키우다가 한꺼번에 폭발하는 플리니식 분화(Plinian eruption)를 일으키기 쉽기 때문입니다. 플리니식 분화란 가스와 화산재 혼합물이 초속 수백 미터의 속도로 대기권 상부까지 치솟는 초대형 폭발을 말하며, 분연주 높이가 20~45km에 달하기도 합니다. 서기 79년 폼페이를 통째로 매몰시킨 베수비오의 분화가 바로 이 유형이었습니다.
얼마 전 뉴질랜드에서 화산 폭발로 주변 지역에 큰 피해가 발생한 사건을 뉴스로 접했습니다. 화산 활동을 가까이서 구경하려던 사람들이 폭발에 휘말려 목숨을 잃는 장면을 보면서, 화산이 단순한 자연 경관이 아님을 다시 한번 절감했습니다. 뉴질랜드 화이트 아일랜드(화카아리)가 바로 성층 화산과 수성 화산 분화의 특성을 동시에 가진 곳이었습니다. 수성 화산 분화(phreatomagmatic eruption)란 마그마가 지하수나 해수 같은 외부 수체와 만날 때 물이 순간적으로 수증기로 변환되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하는 폭발을 말합니다. 규모가 작더라도 극히 위험하며, 예고 없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화산 분화 유형을 정리하면 위험도 파악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됩니다.
- 하와이식 분화: 저점성 현무암질 용암이 조용히 흘러나오는 방식. 화산 폭발 지수(VEI) 1~2 수준으로 상대적으로 피해 범위가 제한적입니다.
- 스트롬볼리식 분화: 화산 탄과 화산재가 주변에 낙하합니다.
- 플리니식 분화: 초대형 폭발로 분연주가 성층권까지 치솟는 방식. VEI 4~8의 넓은 범위에 해당하며 수백 킬로미터 밖까지 화산재가 퍼집니다.
- 수성 화산 분화: 마그마와 수체의 접촉으로 발생하는 폭발. 규모 대비 파괴력이 매우 크며 예측이 어렵습니다.
국제화산학·지구내부화학협회(IAVCEI)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 약 1,500개의 활화산이 존재하며, 이 중 상당수가 인구 밀집 지역 인근에 분포하고 있습니다(출처: IAVCEI).

분화 감시, 지식보다 시스템이 사람을 살립니다
화산을 분류하는 기준 중에 활동 상태에 따른 구분이 있습니다. 활화산, 휴화산, 사화산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자료를 찾아보면서 가장 놀랐던 부분은, 이 구분이 생각보다 훨씬 모호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잠든 화산'이라고 알려진 휴화산(dormant volcano)이 수천 년의 침묵 끝에 갑자기 깨어난 사례가 실제로 존재합니다. 휴화산이란 역사 기록상 분화 이력은 없지만 지질학적으로 마그마 활동이 완전히 끝나지 않아 언제든 분화 가능성이 남아 있는 화산을 말합니다. '잠들어 있다'는 표현이 결코 '안전하다'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제가 이 부분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화산학자들이 화산의 종류를 분류하고 특성을 분석하는 작업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지식이 실시간 감시 시스템과 연결되지 않으면 실질적인 안전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토바 칼데라의 분화가 약 7만 4천 년 전 인류 집단 크기를 급격히 줄였다는 가설이 있을 정도로, 초화산(supervolcano)급 분화는 문명적 차원의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초화산이란 공식 지질학 용어는 아니지만, 화산 폭발 지수(VEI) 8 이상, 즉 분출물이 1,000km³를 초과하는 대규모 화산계를 가리키며 옐로스톤과 토바가 이에 해당합니다.
활화산과 휴화산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마그마 챔버 내부의 압력 변화와 지진 활동을 분석하는 일이 이론 연구만큼이나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연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정복이 아니라 이해와 준비입니다. 한라산 정상에서 백록담을 내려다보던 그 순간의 경이감이, 지금 돌이켜보면 자연에 대한 겸손함을 배운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화산은 분류표 안에 넣어두기엔 너무 역동적인 존재입니다. 성층 화산이냐 순상 화산이냐를 아는 것보다, 그 화산이 지금 어떤 상태에 있고 어떤 분화 양식을 택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아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지질학자와 정부 당국의 협력적인 모니터링 체계가 강화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화산을 배운다는 건 결국 인간이 자연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배우는 일이기도 합니다. 관심이 있다면 가까운 제주도 지질 공원이나 관련 전시관을 직접 방문해보는 것을 권합니다. 책이나 화면으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감각으로 화산을 이해하게 됩니다.